티스토리 뷰
혐오 자극과 처벌
느껴지거나 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다수의 신체 상태를 발생시키는 혐오 자극은 감소하거나 중지될 때 강화물로 작용하는 자극입니다. 혐오 자극이 다른 방식으로 행동과 연결되면 효과도 달라집니다. 반응적 조건화에서 벨소리처럼 예전에는 중립적 자극이었지만 여기에 전기 충격처럼 유해한 자극이 약간 간격을 두고 따라 나오는 경우가 반복된다면 벨소리가 반응을 끌어내게 됩니다. 불안으로 느껴지는 이 반응은 특히 자율신경계에서 일어납니다. 벨소리는 조건화된 혐오 자극이 되고, 이 자극은 긍정적으로 강화된 행동이 일어날 확률을 변화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활발하게 토론에 참여했던 사람이 자기를 불쾌하게 대했던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본다면 열의가 식든, 이상한 말을 하거나, 아예 입을 닫아버릴 것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 강화 행동이 두드러질 수도 있습니다. 공격적이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하거나 그 자리를 피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불안을 느껴서 행동이 변하는 것이 아닌 불안으로 느껴지는 조건을 생성하는 혐오 수반성 때문에 행동이 변한 것입니다. 처벌은 부정적 강화와 혼동되기 쉬우며 때로 '혐오 통제'라고 불립니다. 동일한 자극이 쓰이는 데다가 부정적 강화가 행동하지 않음에 대한 처벌로 정의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부정적 강화가 행동을 발생시키는 반면, 처벌은 행동을 레퍼토리에서 제거하고자 고안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벌 수반성은 강화의 이면일 뿐입니다. 행동이 처벌을 받으면 행동 혹은 정황에서 발생한 다양한 자극들이 반응 패턴으로 조건화됩니다. 이때 처벌받는 행동은 회피나 도피로 조건화된 어떤 행동, 동시에 수행할 수 없는 어떤 행동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처벌받은 사람이 처벌받을 만하게 행동하는 '경향'은 그대로 남지만 다른 무엇을 함으로써, 혹은 고집스럽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처벌을 피합니다.
과거에 처벌받았던 상황에 다시 놓였을 때, 혹은 이전에 처벌받았던 행동에 다시 착수했을 때 이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처벌 유형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한 처벌의 주체 혹은 기관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향후 처벌을 피하고자 한다면 수치심, 죄의식, 범죄 의식으로 느껴지는 조건을 완화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감정 때문에, 혹은 감정이나 나중에 바뀌었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자기가 노출된 처벌 수반성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사람은 처벌받을 만한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그렇게 행동할 의도가 있을 때는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처벌의 빈도, 엄격성, 스케줄은 자주 감정이나 성격 탓으로 치부되는 행동의 또 다른 측면들을 낳습니다. 행동이 처벌하는 결과와 강화하는 결과를 다 갖는 경우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익숙합니다. 행동이 여전히 일어나되 약하게 일어난다면 억제, 수줍음, 당황, 두려움, 조심성을 나타낸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검정을 바꿔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수반성을 바꿔야 할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행동을 유발하되 그 행동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조건화된 혐오 자극이 소거될 수도 있겠습니다. 처벌적 결과를 무릅쓴 강력한 행동은 용맹, 용기, 혹은 대담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강화하는 결과를 강조하고 처벌을 최소화함으로써 사람을 격려합니다. 사람에게 좀 더 용감한 기분을 느끼게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리석은 이가 위험한 상황에 달려드는 이유는 무모한 기분 때문이 아니라 강화하는 결과가 처벌을 완전히 없어지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처벌을 제공함으로써 그의 행동을 바로잡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구성주의
행동에 대한 초기 연구들은 곧잘 형태 혹은 구성에만 한정된다고 이야기됩니다. 감정과 마음 상태를 원인으로 보기를 거부하고 '객관성'에만 집요하게 관심을 두었으니 이런 시각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습관 형성은 구성주의의 원칙이었습니다. 여기서 습관을 얻게 된다는 것은 특정 방식의 행동에 익숙해진다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학습의 빈도 이론들 또한 구성주의적이었습니다. (구성주의 심리학은 지식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이 구성해 나간다는 점을 강조하는 학파입니다) 이 이론들은 그전에 일어났던 일이 또 일어날 것이라는 과거에 가장 자주 했던 행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을 뿐입니다. 행동주의는 정치적 행동의 양상에만 한정되었고 인류학 내의 구성주의는 관습을 따르는 대부분 그렇게 따르기 때문이라는 입장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구성주의와 행동주의는 모두 지금과 여기의 본질적인 특징을 찾느라 과거와 미래를 등한시 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행동주의가 감정과 마음 상태를 행동에 대한 설명으로 적합지 않다고 보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았다면 사실상 일종의 구성주의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행동주의는 환경에서 대체물을 찾았습니다. 강화 수반성의 역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됨으로써 우리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속성들 너머까지 나아가기가 수월해집니다. 구성주의는 학습 혹은 능력과 수행의 구분에 관여합니다. 당시에는 수행의 변화가 불규칙하게 관찰되었기 때문에 이 구분은 학습의 초기 연구에 유용했습니다. 학습이 질서 정연한 과정이라고 주장된 까닭에 유기체의 행동에서 학습이 아주 정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고 가정함으로써 이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행과 수반성 사이의 질서 정연한 관계가 밝혀졌고 내면에 따로 존재하는 학습 과정이나 능력에 호소할 필요는 사라졌습니다. 구성주의는 순수한 기술에서 더 나아갈 때가 많고 구성주의의 전략 중 하나는 아주 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능적 관계라는 개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에는 구성을 보고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플라톤의 형상 이론은 사건을 동일한 사건 혹은 비슷한 사건에서 도출한 원들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형상, 형태 혹은 구조에서 설명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작적 행동에서 마음
'마음'이라는 말을 포함하는 영어 표현들이 행위 개연성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갈 마음이 있다(I have a mind to go)." 같은 표현이 그렇습니다.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는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분비샘이나 내장이나 혈관을 강화를 수반함으로써 조직적 통제를 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두고 '마음이 물질을 통제하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증명된 것은 삶의 분비샘이나 내장, 혈관이 조작적 수반성에 따라서도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부입니다. 심리 활동이 조작적 조건화에 필수적이라는 시작은 감정이나 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상태가 인과적으로 유효하다는 시각의 하나의 예시일 뿐입니다. 행동에 특히 요구된다고 이야기되는 심리 활동들을 가리키는 단어들은 이외에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행동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 '판단'해야 합니다. 파블로프의 개는 음식을 예측했기에, 혹은 음식을 '기대했기에' 침을 흘렸습니다. 조작적 실험에서 쥐는 음식이 나올 것으로 '예측했기에', 혹은 자기가 그렇게 하면 음식이 주어진다고 기대했기에 레버를 눌렀고, "사회 학습 이론에서 행동이 일어날 잠재성은 행동이 특정한 강화 혹은 다수의 강화로 이어 지루한 기대와 주어진 상황에서 이 강화들이 지니는 가치의 상관관계로 고려됩니다. "행동 확률은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의 강화 빈도가 좌우한다." 어떤 사람은 '판단', '예측', '기대'와 결부된 조건들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이해는 조작적 조건화에 필요하다고 가정되는 또 하나의 심리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계산하는 것의 규칙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행위는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필요하다고 이야기되는 또 하나의 상태의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얻거나 싫어하는 것을 피하는 기회를 얻는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회는 수반성에 있습니다. 믿음이 그 밖의 조건, 가령 욕구나 필요와 맺는 관계는 쉽게 말해 "욕망이 믿음의 인과 관계에 개입한다."는 말은 어떤 믿음과 연결된 행동의 확률은 강화뿐만 아니라 박탈 상태나 혐오 자극에도 좌우된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조작적 조건화가 행복 추구의 일면일 뿐이라고도 합니다. 행복은 감정이고, 조작적 강화의 부산물입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강화로 작용하는 것들이지만 이것들 자체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확인되고, 예측, 통제, 해석에 쓰여야 합니다. '추구'라는 단어는 목적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추구는 탐구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달성함으로써 강화된 행동일 뿐입니다. 행동은 강화를 받은 후에 비로소 추구됩니다.